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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찾기< 그래 힐링이 살아갈 힘이다 > 에 실린 나의 글

이애연 2014. 1. 9. 01:46

 

                                                           보물찾기

 

                                                                                                                                      이 애 연

 

 

 ‘산은 나의 힐링 캠프다.’ 내 몸은 물론이고 마음까지도 치유해 주기 때문이다.

 

전문적인 산악회에 가입해서 주말마다 산에 오른 적이 있다.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고 내리는 너 댓 시간의 코스를 무거운 배낭까지 짊어지고 따라다녔다. 등산만큼 매력적인 취미생활도 없었기 때문이다. 높은 산일 수록 숨이 차고 육체적 고통이 따랐지만, 최고봉에 발을 딛는 순간 정상을 정복했다는 성취감에 희열을 느꼈다. 산 하나를 정복하면 다른 산이 또 나를 유혹했다. 신의 영역이라는 정상에 잠시 머물다 하산했지만, 늘 보물 하나 챙겨 온다는 만족감으로 뿌듯했다. 어디에서도 만나지 못했던 힐링 에너지를 산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고향의 설봉산은 추억의 장소였다. 어린 시절 봄가을 소풍을 거의 그 산으로 갔기 때문이다. 다음 날엔 종아리가 아파서 쩔뚝거려야 했지만, 그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잠까지 설쳤던 건, 사이다 한 병의 달콤함과 보물찾기 행사 때문이었다.

산꼭대기쯤에 자리 잡은 천년고찰 영월 암은 초등학생 걸음으론 두 시간 쯤 올라가야 도착할 수 있었다. 계속되는 오르막길이 힘에 부쳐 헐떡거리다가도 절을 보는 순간 힘이 솟아오르곤 했는데, 배낭 속에 들어있는 김밥과 삶은 계란 먹을 생각에 흥이 절로 났기 때문이다.

 

장기자랑 시간이 끝나면 소풍의 하이라이트인 보물찾기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작은 네모로 접힌 종이를 찾으려고 숲 주변을 헤매며, 바위 밑이나 나뭇가지 사이를 뒤졌다. 보물쪽지는 무심히 놓인 돌덩이를 들춰보면 나오기도 했는데, 나에게도 딱 한번 행운의 여신이 찾아왔다. ‘크레파스’라고 적힌 쪽지를 바위틈에서 찾았을 때 그 기쁨은 말할 수 없이 컸었다. 그건 내가 산에서 받았던 최초의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크레파스로 그린 풍경화가 교내 미술대회에서 최고상을 받게 되었으니 나에겐 겹경사가 일어난 셈이다. 아마도 그때부터 산은 신바람 나는 장소로 내 가슴에 각인되었지 싶다.

 

우수에 찬 눈빛에 끌렸던 K대 복학생 오빠와 두 계절쯤 사귄 적이 있었다. 은행잎이 노랗게 깔린 남산 길을 나란히 걷는 것만으로도 스무 살 내 마음은 마냥 설레었다. 돌발적인 입맞춤에 놀라서 벌어졌던 내 눈을 이내 감아버린 건, 갑자기 하늘이 빙빙 도는 어지러움 때문이었다. 귀에서 종소리가 들렸던 내 생애 첫 키스가 ‘하늘 말 나리꽃’처럼 피어났던 곳도 남산이고, ‘수필등단을 기원 한다’며 산악회 회장이 행운의 네잎크로버를 내손에 살며시 건네줬던 곳도 지리산등반 길이었다.

그래서일까? 산은 아련한 행복과 희망을 주던 힐링 장소로 떠오른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숲속의 나무들은 닮은꼴이 하나도 없다. 곧게 뻗은 나무, 용트림하듯 휘어 올라간 나무. 비스듬하게 누운 나무. 서로서로 슬쩍 비켜서며 가지를 뻗고 자란다. 다른 나무를 방해하지 않고 공생한다. 이기적이지 않은 상생의 평화지대다. 그래서 산에 들어서면 마음까지 평온해 지는지도 모르겠다. 유년시절 엄마 품에서 안락함을 느꼈던 것처럼, 산에 안기면 왠지 마음이 편해지고 새로운 자신감도 생겨났다.

 

느지막이 오십대 후반에 산악회에 가입한 것은 뇌졸중의 위험을 경고하던 의사의 권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행복한 추억이 떠오르는 산에서 공허한 내 마음을 위로받고 싶어서였다. 그건 어린 날 보물쪽지를 산속에서 찾아냈던 것처럼 또 다른 보물을 찾아내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