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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장산 겨울산행

이애연 2014. 1. 26. 10:47

< 안개비 내리던  운장산 겨울산행>

 

  깜짝놀라 눈을 떠보니 새벽 6시 55분이다.

알람소리도 못듣고 자는 떡실신 잠모드가 또 화근이다.

큰일났다.

산악회 버스는 7시에 외환은행 앞에서 출발하는데  모처럼 신청했던 겨울산행은 다 틀렸다.

운장산 산행이 늦잠때문에 물거품이 되는 어처구니 없는 순간이다.

아쉽지만 갈수없게 되었다고, 혹시나 나를 기다리느라 산악회 버스 출발시간이 지연될까봐 총무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5분동안 준비하고 외환은행앞까지 가는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 7시 30분 출발이니까 빨리 오세요"

   "7시출발 아니었어요?"

 출발 시간을 착각했던 나의 우문에, 총무님의 명쾌한 현답을 듣고서야 운장산에 갈수 있다는 희망이 보였다.

그리고 핸드폰을 내려놓자마자 눈썹을 휘날리며 번개불에 콩튀기듯 준비를 시작했다.

대충 이닦고 세수하고,

 빛의 속도로 등산복 챙겨입고,

전날 준비해놓은 영양죽 데워서 보온밥통에  챙겨넣고,

 배낭둘러메고 시간을 보니 7시 10분!

시간이 꽤 남았다는 사실에 여유로운 웃음까지 날리며 준비물 마무리 총정리에 돌입.

민낯이던 얼굴에  대충 분 찍어바르기도 끝내고, 

향좋은 커피까지 보온물통에 담았는데도  겨우 5분 걸렸을 뿐이다.

눈뜨면서 이 모든 과정을 15 분에 돌파한 나의 초능력이 스스로 생각해도 놀랍다.

꼭 겨울 운장산을 오르고야 말겠다는 불타는 의지가 아니면 도저히 기필코 나올수 없는 신기록이다.

 미리 불러놓은 콜택시 타고 외환은행에 도착하니 해밀버스는 아직도 도착전이고,

  게다가 시간이 남아 돌아서 출발 오분전이라 마냥 느긋했다.

나보다 뒤늦게 허둥대며 도착한 사람들도 꽤 있었으니, 

늦잠으로 운장산행을 포기했던 좀전의 나를 짐작이나 할까?

만약에 올림픽에 '초스피드 산행준비 종목'이 따로 있었다면 단연코 금메달감 아닐까 싶다.

......

해밀 버스가 먼길 달려서 운장산 기슭에 도착했다.

가벼운 스트레칭후에 산길로 접어들때의 시간은 오전 10시 50분이었다.

해밀산악회의 산행길엔 언제나 해가 뜬다는 전설대로,

 비가 많이 온다던 일기예보는  빗나갔다.

그러나 푸근한 날씨와 안개비때문에 눈이 녹은 산길은 생각보다 힘들고 위험했다.

 앞에서 미끄러지고 뒤에서  자빠지니까 내 다리에 자꾸만 힘이 들어가고 무릎이 흔들렸다. 

 질척한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중심잡으려고 안간힘쓰다가 자구만 넘어지는

 진달래 산대장의 폼이 너무 코믹해서 그만 웃고말았다.

 웃으면 절대로 안되는 상황인줄 알면서도 터지는 웃음 못참고 웃은벌인가?  

뒤따르던  나도 미끄러지는 바람에  엉덩방아를 제대로 찧고 눈물이 찔끔나게 아픈맛을 보았다.

 

  안개가 산행내내 짙게 깔려서 시원한 전망을 방해했지만 나쁘지만은 않았다.

가파른 눈길 오르느라  구슬 땀이 밴 이마와 뺨을 스치는 안개비가 어찌나 상큼하고 시원하던지~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삼복복 더위에  에어컨 바람앞에서 땀을 식힐때의 기분처럼 달콤하기까지 했다.

머리위 앙상한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릴때도  흙바닥에 붙어가는 우리에겐 바람이 닿지않는게 이상했다.

거칠것없는 바람에게도 바람길은 따로 있나보다.

산바람은 우리가 오른는 길을 피해  계곡 숲으로만 달리는듯 했다. 

연기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안개를 보니,

잔잔한 안개의 움직임이  마치 바람길을 바라 보는듯 신비롭게 느껴졌다.

 

 좁은 길가에 끝없이 이어지던 키작은 산죽의 초록잎과 흰눈이 묘한 조화를이루어 아름다웠다.

산죽이 머금고 있던 이슬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구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마치 수틀속의 팽팽한 백색의 비단천을 바늘이 뚫고 지날때 나는  소리같다.

수틀에 바늘이 통과하는 소리는  수놓는 사람에게만 들리듯,

흰눈더미 뚤리는 소리도 그렇다. 

가랑비에 옷젖는다더니, 

산을 덮은 눈옷은 안개비에  수많은 구멍을내고 곰보가 되었다.

 

겨울산행이지만 바람도 상큼한  산길은 봄기운이 성큼 다가온 생명의 기운을 느끼게 해주었다.

나뭇가지 끝에 봉긋 모인 싹눈의  에너지가 봄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해주는듯 했다.

 

산행중에 해밀 일행 한사람이 안보여서 혹시나 길잃었을까 애태우며,

가던길 멈추고 인원수를 세고 또 세고를 반복했던 일도  남의일 같지 않아 걱정이 되었던건?

2년전 계방산의 눈꽃 산행길에서 일행을 놓치고, 눈길을 홀로 헤메며 사투를 벌였던 공포추억이 떠올라서다.

없어진 일행은 앞질러 다른 산악회원들과 내려갔음을 확인하고 모두가 맘을 놓는 에피소드로 끝났다. 

계방산행의 악몽때문에 다시는 겨울산행을 안하겠다고 굳은 결심을 했었는데

어느새 슬그머니,  또 다시 눈길산행을 즐기는걸 보면

확실히 산속에 중독성있고 치명적인 무언가 있기는하다.

 

   안개비에 촉촉하게 젖어버린 내 등산복은 집에 도착해서 비누로 세탁하면 말끔해 질것이고,

질척하게 눈녹은 흙길에서 더러워진 등산화는 물로 닦으면 깨끗해 질것이다.

땀에 쩔은 내몸은  바스샴프를 이용해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치면 향내까지 날것이다.

그러나 뒷처리가 절대로 필요없는 것도 한가지 있다.

매연가스로 오염된 내 몸속이 그렇다.

내 몸안의 독소들은 겨울산의 청정공기로  혈관속과 페속까지 크린싱하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내몸은 물론이고 마음까지 무공해 산속에서 깨끗하게 정화되어 깃털처럼 가벼워진게 그 증거다.

갈때 무겁던 몸이  집에돌아오니 깃털처럼 가볍다.

이것이 바로  중독성이 강한 등산의 치명적인 매력이다.

그래서  한짐 짊어지고 오르는 힘든 산행길에 자꾸 빠지게 되나보다.

내려올때 가벼워진 그 느낌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