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은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이다
이 애 연
아직은 꽃샘바람이 차가운 3월초. 연둣빛 띠로 치장한 한국수필이 내 품에 안겼다. 표지만 보아도 봄이 왔음을 느낄 수 있는데, 열어보니 온통 꽃 이야기다. 수필의 매력은 간접체험을 통한 공감대에서 오는 감동이다. 때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읽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내 영혼에 낀 먼지가 닦여나가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상쾌해진다. 마치 비온 뒤에 더 선명해진 나무의 초록빛을 보는 것처럼……. 수필공부를 하는 나에게 월간지 한국수필은 교과서고 참고서다. 특히 선배작가들의 수필을 읽으며 많은 공부를 하고 있는 햇병아리가 감히 독자촌평을 쓴다.
테마 특집시리즈(얼굴)
*이은영의 내 얼굴- “사람의 얼굴을 팔자로 돌려서는 안 된다. 나이를 피할 수 없고 늙어가는 것을 젊음으로 되돌릴 수 없지만, 자신의 외모와 영혼을 잘 가꾸면 나이와 상관없이 곱고 광채가 난다”는 말이 공감되어 흥미롭게 읽었고, 나이 먹을수록 영혼의 가꿈이 중요함을 재확인하게 되었다.
발행인 에세이
* 정목일의 수필 어떻게 쓸까- “수필은 개인적인 체험의 사회적인 공유화를 위한 것이다. 수필가는 먼저 참다운 인격체가 아니고서는 좋은 수필을 쓸 수 없다. 수필은 꾸며낸 얘기가 아닌 자신의 고해성사이기 때문이다.”는 글에서 내가 늘 품어왔던 의문에 명쾌한 답을 얻은 기분이다. 수필을 공부하는 나에게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다 “수필을 쓰면서 내 인생을 바라본다. 수필을 무기로 삼을까? 눈물을 닦는 손수건으로 삼을까? 깨달음으로 가는 벗으로 삼을까?” 작가 스스로에게 한 이 질문을 나에게도 던져 보았다. 수필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후, 일상의 글을 쓰면서 자꾸 눈물이 나는 까닭은 지난 일의 잘못을 고해성사처럼 풀어내면서 회환에 잠기기 때문임을 확인하게 해준 글이었다. 나는 수필을 눈물 닦아주는 손수건으로 삼기로 했다.
특집 1 (봄, 그 시작)
봄이 오는 소리를 모아 놓은 특집의 특성상 어쩔 수 없지만, 거의 비슷한 봄 얘기여서, 다소 지루한 감이 있었다. 참신한 소재의 빈곤감을 느꼈다. 오히려 꽃 이야기외의 작품을 흥미 있게 읽었다. - 윤재천의 <수필문학, 용이 되는 해> “수필박물관의 초석을 마련해 기둥을 세우고, 우물을 파야 물이 나오듯 첫 삽을 뜨는 것이 중요하다” 는 글처럼 시작이 반이니까 머잖아 수필박물관이 완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박종철의 <진달래의 꿈> “아무리 생활이 과학화 되고 머리가 삭막해저도 근저에 흐르는 문학의 혈통이야 말로 메마른 혼을 위로하고 구원하는 요소가 될 것이니 수필의 새 틀을 마련하는 작가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지친 영혼이 위로받는 건 ‘어린 왕자’ 같은 맑은 책이 있기 때문이다.
*김미원의 <예전에 꽃필 무렵에> “욕망이 충족되면 잠시 행복할 뿐, 또 다른 욕망이 생겨나고 예상치 않은 갈등이 생겨난다. 이 욕망만 해결되면 행복할 것 같은데, 전에는 몰랐던 더 큰 욕망이 자리를 대신한다. 그리하여 인간들에겐 늘 벨 에포크 (좋은시절) 는 과거일 수밖에 없다.” 작가의 말대로 고도는 오지 않듯, 우리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벨 에포크는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에 만족해야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지상강좌 Q&A
* 유한근의 <문체는 문채이다> “문장 혹은 문체는 연습이나 훈련을 통해서 향상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필요한 것은 창조적인 사고를 유지하고 개발하는데 있다.”고 답하듯이 창조적인 사고와 참신한 감성으로 단어 선택의 감각을 키우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여행가방
*김용만의 <내 아내 자리를 노리는 내 여행가방> “거의 이십 년 동안 동거동락해온 그 까만 가죽 제품은 크기와 모양이 메주를 닮아 귀족이나 천민 따위의 계층적 이미지를 불식시켜주고 있다.” “여보 손가방이 너무 불쌍하오, 그러니 이번 페루 여행에서는 가방과 동침할 작정이니 아내 자리를 양보해줘요.” 제일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다. 발상의 전환과 다른 시선으로 사물보기 그리고 상식을 뛰어넘는 반전이 매력 넘친다. 특집 2
(한국수필 운영이사 신춘 신작)
* 정동호의 <움직이는 이정표> 마라토너가 42km를 완주하기 위해 작전이 필요하듯, 등산을 할 때나 인생길에서도 체력 안배를 하고 싶다는 작가의 말처럼, 멈추면 보이는 것들을 감상하면서 느리게 가고 싶다. 남보다 조금 늦게 도착해도 결과는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전수림의 <축제의 봄을 일구다> “채마밭을 가꾸는 일이나 글 쓰는 일이나 내 인생에 있어 단연 최고의 농사다.” 글 쓰는 일이 씨 뿌리고 농사지어 추수하는 과정과 닮았음을 나타낸 작가의 표현이 정말 맛깔 난다. 글도 맛있어야 잘 읽힌다는 걸 이제 알겠다.
월산의 사람 사는 이야기- 김기동의 <이 녀석아, 너 그러다가 골병 든다> 어른 지게를 메고 짐을 나르던 어린 소년이 남의집살이에 골병드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는, 고된 머슴살이를 진솔하게 써내려간 부분이 짠한 감동을 준다. 가슴을 울리는 글이 좋은 글임을 다시 확인한 셈이다.
문화재 산책(21)
* 유혜자의 역사의 무게(국보 제 3호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국보 제 3호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가 천사백년 동안 거친 비바람과 전란을 겪었던 북한산 문수봉에서 경복궁 근정전 회랑에 옮겨졌다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 1층으로 옮겨왔다는 사실은 무심코 지나치던 문화재의 소중함과 존재를 일깨워준 매우 유익한 글이다. 번역 에세이
*정명숙의 일본 편(12)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미운 짓만 골라서 하는 일본에 대해 별 흥미는 없었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우리나라의 설치예술가 백남준이 일본의 자랑인 오카모토 타로오와 함께 일본을 빛낸 사람으로 등재되어 있다는 내용과 백남준 일가가 모두 창씨개명을 했는데도 오직 백남준만이 조선이름을 고수했다는 사실을 소개한 글에서 한국인의 자긍심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책 읽는 세상
* 김단혜의 <하늘로 가는 이삿짐을 싸는 남자를 만나다> 혼자서 외롭게 죽어가는 고독 사, 그들의 짐을 정리 해주는 새로운 직종이 유품정리인 이다. 이글을 읽으면서 누구나 한번은 죽음을 맞이한다는 점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오늘 내가 산 물건이 내일 유품이 될 수도 있다."는 글에 깊은 공감을 느끼며, 오늘을 마지막 날처럼 정리하면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춤 파랑 고현주가 추천하는 낭독수필
*윤중일의 <그날도 영하 16도였다> 난산으로 출생한 막내아들의 간질 발작 치료를 하기위해 매주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아야 하는 아빠와 아들이야기다. 뇌파검사에서 정상 판정을 받을 때까지, 정상아로 세우려는 아버지의 피나는 노력과 눈물겨운 부성애가 절절히 녹아있는 글이다. 체험을 통한 감동이 있어야 독자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점을 피부로 느꼈다. 그러나 이 수필은 2월호 사색의 뜰에도 소개되었던 같은 내용의 작품인데 왜? 또 실었는지 의문이 일기는 했다.
사색의 뜰
*이순선의 <세 번 돌아보는 날> 헌집을 헐고 새집을 지을 때, 일조권 문제로 다투면서 사이가 나빠졌던 뒷집 남자가 갑자기 죽자, 그 부인은 소리 없이 이사를 가버렸다. 새로운 사람이 이사 오던 날 이웃과 잘 지내지 못한 후회를 한다. 그런데 앞집 주인이 이른 아침마다 길을 쓸면서 지나가는 동네사람들에게 웃음으로 인사를 건네는 것을 보고 골목을 쓸기보다는 인정을 나누어준다고 여겨져서 자신도 그렇게 하고 싶어진다. 새로 이사 온 뒷집의 이삿짐이 정리될 때에 맞춰서 더럽혀진 그 집 앞까지 쓸어줄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웃 간의 소음 때문에 끔찍한 분쟁이 잦은 요즘에 무언가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다
신인상 당선작
*이선영의 <냉이> 외 1편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언 땅이 물고 있는 냉이뿌리는 가질 수 없는 열망에 더 탐스럽다.” “언 땅은 흙냄새도 나지 않는 너 따위에게 겨우내 내가 품은 하얀 속살을 내줄 수 없다고 냉이 뿌리를 꼭 끌어안는다.” 신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깔끔한 문체와 표현력이 놀랍다. 이글을 읽은 후 더 열심히 어휘발굴에 힘써야한다는 각오가 새롭게 일어났다. “넘치려는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찬물 한 종지만한 희생 제물이 필요 했으리라. 하지만 부인의 표정에서 승리자의 눈빛이 읽혀지지 않는다.” 지하철에서 어떤 아저씨가 다리 좀 뻗고 앉았다는 이유 하나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비난하면서, 싸움을 건 중년부인을 묘사한 글이 리얼하다. 7년간 근무하던 회사에서 부당해고를 당한 작가는 그 당시에 누구라도 싸울 상대만 생기면 덤빌 각오로 보냈던 날들을 회상하면서 쓴 글이라 했다. 대판 싸움이 벌어지길 은근히 바랐지만 싱겁게 끝나버린 현장을 참 실감나게 표현한 점이 돋보인다.
*안철진- <산채하는 맛> 외 1편 복 놀이 남자가 나물 캐고 음식 만들기를 소재로 글을 썼다는 게 신선하고 흥미로워서 읽어보니, 여자들이 덤덤하니 흘려보낸 것들을 세심히 관찰하고 재미까지 느끼면서 썼다는 게 이채롭다. 여자도 남자의 영역이라 생각되는 일을 찾아서 체험해보고 글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한 줄도 빼놓지 않고 꼼꼼하게 읽었다. 어떤 글은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단숨에 읽어 내려가기도 하고, 밋밋하고 개성 없는 너무 흔한 소재의 글은 지루하게 읽기도 했다. 특집의 글 소재가 봄이라서 그렇겠지만, 그 시작은 거의가 꽃을 주제로 한 이야기여서 다소 싫증이 나기도 했다. 똑같은 봄 이야기라도 뭔가 다른, 독특하고 창의적인 역발상이 필요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 한국수필 2013년4월호에 실렸던 독자촌평/ 2013년3월호를 읽은후에 쓴 독자입장에서본 촌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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